어렵게 배운 것이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지름길을 좋아합니다. 쉽게 배우고, 쉽게 돈을 벌고, 쉽게 위대한 것을 성취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제가 인생 수업을 받고,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쉽게 배운 것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빠져나갑니다. 도박을 통해 쉽게 번 돈은 헤프게 써 버리거나 다시 도박해서 더 많이 잃어버립니다. 땀 흘려 번 돈이 소중합니다. 힘들게 번 돈을 모은 후에 나누고 베푸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고귀한 것은 기도와 눈물과 피와 땀으로 만들어집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배움의 즐거움은 고통을 통해 임합니다. 배움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열림입니다. 깨달음이 임하면 마음의 눈이 열리고, 지성의 눈이 열립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눈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영의 눈이 열립니다. 깨달음의 순간에 “아 하!”라는 감탄이 나옵니다. 깨달음은 깨어짐의 아픔을 통해 임합니다. 깨어짐이 깨달음을 낳습니다. 암탉이 달걀을 21일 동안 품습니다. 21일이 되면 달걀 껍데기가 깨어지면서 병아리가 탄생합니다. 깨어짐이 없이는 새 생명의 탄생이 없습니다.
고통스런 깨어짐을 통해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씨앗은 어두운 흙 속에서 깨어지는 아픔을 통해 새싹을 틔웁니다. 깨어짐이 깨달음을 낳는 것처럼 고통이 교훈을 낳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통해 배운 것을 오래 기억합니다. 고통스럽게 배운 것은 영혼의 흔적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통 없이는 배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레이 스티븐슨은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고통을 찬미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도 고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주는 아픔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종합선물 세트 안에는 고통이라는 선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착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통은 신비입니다. 신비에 속한 영역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고통의 연유(緣由)를 하나님께 여쭈어보아도 그 문제만큼은 대체로 침묵하십니다. 다만 세월이 지난 후에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고통이 우리의 스승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변장된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이 과속(過速)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이 우리의 과욕을 다스리는 거룩한 약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이 우리를 죄악의 수렁에서 건져낸 천사의 손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성장하는 중에 받은 유혹은 쉽게 배우고 싶은 유혹이었습니다. 제가 받고 싶었던 은혜중의 하나는 쉽게 성장하는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게 그런 은혜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고난의 광야를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연약한 육체의 고통을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실패를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버림받고 거절당하는 상처를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오해와 비난과 비판을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침체의 어두운 터널을 서서히 통과하게 하심으로 저를 성장시키셨습니다. 고난을 통해 생각의 근육을 키우시고, 견딤의 근육을 키우셨습니다.
요셉을 성장시킨 곳은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채색옷을 입고 무게를 잡을 때, 그는 지혜로운 소년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을 성장시킨 곳은 형제들이 그를 미워해서 집어넣은 구덩이였습니다. 종살이하며 지냈던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대가로 보내진 감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난의 깊은 감옥에서 깊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지혜롭고 신중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릴 적에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께 고자질했던 요셉은 고난을 통해 입이 무거워졌습니다. 형제들의 과실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신중함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유연함의 힘을 배웠습니다.
딱딱하고 거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유연한 것이 거친 것을 이깁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오래갑니다. 딱딱한 치아가 빠질 수 있어도 부드러운 혀는 빠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저는 고통을 통해 배웁니다. 또한 책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그 이유는 책 속에서 고통을 통해 성장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할 수 없었던 헬렌 켈러의 가르침은 깊은 교훈을 줍니다. 그녀는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도 가득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못박히신 고통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십자가 고난 후에 임한 부활의 영광을 배웁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의 십자가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어렵게 배운 것이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