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 선교사님의 편지

벌거벗은 그리스도인과 옷 입은 원주민(마지막 회)


 


[누가복음 9:23-24, 마테복음 16:24-25]아무듣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소망 없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고백이며 간증이다. 단순히 겸손을 떠는 위장된 말이 아니다. 나는 옷으로 죄를 가리려 하는 영적으로 원주민이다. 교만과 자아로 가득하여 나 자신을 결코 부인 하지 못하는 허물 많은 죄인이었다. 세상의 성공과 물질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마테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위선과 합리화를 통해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키는 삶을 살았다. 감성에 치우치는 이성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없이 나를 지배했다. 합리화로 정당화 시킨 생각은 마치 이성처럼 되었으며 옳다고 생각하며 마치 개성적이라는 합리화로 행동하였다. 이익과 잘못된 이성에 합당하지 않으면 친구도 될 수 없었다.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도 성도와의 교재와 행위에 만족을 느끼며 다녔다. 기도 또한 언제나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이었으며 거래의 연속이었다. 구제나 봉사를 하고 나면 나의 만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경을 읽거나 성경 공부를 할 때도 언제나 나의 지식의 만족을 추구하였다. 모든 것이 내 중심적이었다. 말씀을 관념 속에 가두었고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내가 누구인지를 궁금해 본 적이 없다.


[마테복음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알지 못하여 진주를 받을 수 없는 돼지와 같은 존재였다.[마테복음 7:6] 이렇게 나의 영혼은 타락하여 본성을 상실한 죄인으로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장님이며 귀머거리였다. 양심은 굳어져 있었으며 내 자신을 알지 못하고 살았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무시하였다. 믿음과 신앙은 있었으나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나약한 무너지기 쉬운 믿음이었다.


 


어느 날 원주민에 대하여 알게 되었으며 구원을 받고 기뻐하는 부족 형제들이 큰 믿음의 거목처럼 다가 왔다, 장님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는 것같이 나의 영혼은 깨어났고 말씀을 사모하게 하셨다. 말씀에 비추어 나 자신을 돌아 보게 하셨다. 그리고 아직도 정글 속에 잊혀져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이 있음을 보고 듣고 깨닫게 하셨다. 한국을 떠날 때 주위에서 문선교사는 부인을 따라 간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세상의 기준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자질도 능력도 자격도 없던 사람이었다.


오래 참으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이 죄인을 택하여 부르시고 인도하셨다. [로마서 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나에게 하시는 명령이었다.


 


초대하시고 감자 탕을 사주신 후 어둡고 눅눅하고 침침한 텅 빈 지하 예배당에서 목사님이 우리 둘에게 앉으라 하신다,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린 후. 눈물로 안수하시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권면하신다. 목사님의 눈물의 간절한 기도는 친자식을 죽음의 오지로 보내는 고통의 눈물이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부르심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보내주신 천사와 같았다.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섭리였다.


 


지난 긴 세월 동안 파푸아뉴기니의 코라 부족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죄인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지도 알지 못하는 이 죄인, 자신을 부인 할 능력도 상실한 죄인, 본능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타락한 죄인, 선이 없는 죄인, 감정에 따라 행하는 모든 것이 죄악 된 것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영혼, 내 속에 있는 속 사람을 상실한 죄인이었다. 만약 내 안에 선이 있어 스스로 참된 선을 행 할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결코 나를 위하여 죽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소망 없는 죄인 이었다.


[로마서 3:10-1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타락한 영혼으로 쓸모 없는 나에게 부족 형제들을 통하여 은혜로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다. 주님은 죄로 인하여 화인 맞은 나의 양심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셨으며 부인되기를 원하셨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선교사 훈련 중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양식의 도움을 구했던 일,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으로 7년간을 지내게 하셨던 일, 슈퍼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의 공급이 끝나기 전 신실한 분들을 통하여 예비 하셨던 쌀, 참치가 먹고 싶다던 아들에게 상점의 진열대에서 누구인가를 통하여 떨어트려 찌그러진 참치 깡통을 계속 공급하셨던 일, 큰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기 전 신실한 목사님을 통하여 예비 하셨던 정확한 물질, 간장이 없음을 아시고 주셨던 일, 과일이 먹고 싶을 때 성도나 농장을 통하여 주셨던 일, 학비를 보내 왔던 미국인 친구,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오직 믿음 안에서 보내주신 사랑들, 어느 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우리의 필요를 구하거나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은 신실한 주님의 자녀를 택하시어 나의 삶을 감찰하고 계심을 알게 하셨다. 찬양과 경배를 받기를 원하셨다.


내일을 위하여 모아놓으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기게 하사 언제나 주님 만을 바라보게 하셨던 일,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셨으며, 나의 경험과 지식을 따라 행하는 일들을 흔들어 놓으셨다.


[마테복음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몇 번의 죽음 앞에서 다시 살리셨으며


[시편 118: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둘째 아들의 질병을 통하여 죄인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 안에서만 사고가 가능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게 하셨다.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이 죄인 속에 제한 될 수 있겠는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함으로 주권자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고난과 절망감과 두려움과 굶주림을 통하여 하나님 만을 바라보게 하셨다. 죄인을 긍휼이 여기사 고난가운데 두시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미물이며 근본이 잘 못된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하셨다. 나의 죄로 애통하게 하셨으며 온유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하셨다. 고난은 축복의 통로였다. 고난을 통하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알게 하셨고 말씀과 기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임을 알게 하셨다.


[마테복음 5:3-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나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포기하거나 내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삶의 희생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 지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얼마나 어리석은 기도인가? 죄인이 선한 일에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희생도, 어떤 포기도, 어떤 내려 놓음도, 원하시지 않는다. 죄인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 인하여 나는 아무것도 희생 한 것이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차고 넘치는 은혜로 감격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마테복음 6:25-3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중략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한국을 떠날 때 아들을 보낼 수가 없어서, 우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가 싫어서 가족 뒤로 얼굴을 숨겨 버리셨던 나의 어머니. 그 모습은 내가 본 생전의 마지막 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7년 후 내 어머니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에 동료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에 갈 수 있게 하셨고 투병기간 동안 얼마나 저희의 사진을 쥐고 기도 하셨으면 손 안에서 녹아버린 사진들, 그 사진은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그리움과 기도를 말하고 있었다. 5섯살부터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지냈던 한 분 뿐인 나의 형님도 뵙지 못하고 소천하셨다. 옴 몸에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여 50여명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였고 통증 중에서도 연극과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배했던 어린 신실한 막내 처남도 하나님의 품으로 갈 때 보지 못하였다. 언제나 새벽마다 이 죄인 사위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어머님도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가실 때 얼굴을 뵙지 못하였다 언제나 나의 가슴속에서 염려와 걱정 그리고 그리움으로 기도 하게하셨던 가족들이었다.


[마테복음 10:36-39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아버지! 나는 죄인이라 아버지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겠나이다. 이 죄인을 용서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은 질병으로 고통 하는 가족들을 영원한 안식이 있는 본향으로 부르심으로 기도를 응답하셨으며 내 마음의 염려와 걱정을 주님의 온유함으로 인도하셨고 나 또한 천국에 더 큰 소망을 같게 하셨다. 주님이 모든 것의 근본이요 나의 전부인 것을 알게 하셨다.


세상과 구별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거룩을 사모하게 하셨다.


[마테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타락한 부족 형제들의 삶과 문화를 통하여 내 안에도 많은 죄의 열매가 있음을 알게 하셨고 이전에 죄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이 죄인 된 결과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타락한 영혼으로 거룩한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를 알게 하셨다. 죄악 된 의지로는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하셨다.


[마테복음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 하느냐?”]


[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교회의 성도를 의식하며 사역을 자랑하기 위하여 문화적 충격이 큰 것만을 찾아 사진을 찍던 나에게 부족 형제들의 부끄러움과 눈물과 고통이 나의 것이 되게 하셨으며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모두 지우거나 태워 버리는 놀라운 내적 변화가 일어 났다. 구원받고 변화하는 부족의 형제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벗었으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나는 위선의 옷을 입은 영적으로 원주민이었음을 고백한다. 죄로 인한 괴로움은 질병이 주는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이었으나 좌절하여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좌절은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는 적극적인 소망이 되었다.


[마테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고 사랑이었으며 은혜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말씀을 통하여리스도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물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었으며, 피하고 싶은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기쁨의 통로가 되었다. 고난은 내게 유익이 되었다.


[골로세서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두려움이었던 죽음은 소망이 되었고 내 안에서 은혜의 감사와 감격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의 사랑과 경의가 일어났다.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나의 영혼은 회복되었으며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매일 죄를 드러내시고 알게 하시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섭리 안에서 죄를 자복하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성경 말씀이 삶을 인도하고 삶에 응답되고 있음을 알게 하셨다. 믿음의 확신을 더하셨으며 기도와 말씀과 묵상의 시간은 우리가 부족에 있는 가장 큰 동기이며 기쁨이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로써 범사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하셨다.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써 함께 누리는 자유와 기쁨은 세상의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유와 기쁨이다.


[베드로전서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말씀 안에서의 절제와 인내는 제한된듯하나 자유하며 진리를 아는 자로써 감격이며 기쁨이며 진정한 자유 함이다.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하였나 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통행 하였나 가 더 중요하다. 부름을 받은 삶은 축복이며 기쁨이며 환희다. 내가 부름에 답하지 아니하였다면 결코 알 수 없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셨다.


 


사랑하는 십자가의 열정을 간직한 믿음의 자녀들이여! 모든 일을 지금 멈추고 기도하라! 그리고 말씀으로 돌아가라! 말씀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지는 그곳에 새로운 참된 가치관과 삶,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축복과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파푸아뉴기니, 코라 부족에서 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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