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 이민아 선교사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며, 온전하게 운행하신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고, 죄를 받듯이 심판하시며, 죄인은 영원히 죽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선이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부활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으시겠다는 열정으로(The Passion of Christ) 죽으셨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이라는 단어가 고난(Suffering)이라는 어원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열정과는 다른 것이다. 안식년을 위하여 부족을 나오면서 하나님이 부족의 형제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하셨던 복음의 능력을 나누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주셨다.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회개 할 수 있는 긍휼을 베푸시어 매 순간 회개와 자복이 일어나게 하시는 축복으로 인도하셨다.소망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셨으며, “하나님 이 죄인이 쓰임 받는 도구가 되겠다고 결심한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일을 나의 일로 여기고 선한 일을 한다고 물질을 구할 권리가 있는 것 같은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내가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알게 하시어 회개하게 하셨다. 회개를 통하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시험에 백 점을 받아 부모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처럼, 고난 가운데서 계신 주님, 고난을 통해 주님을 얻었기에 고난이 유익이었음을 “아멘” 하게하신 주님, 외로움과 슬픔은 오히려 기도로 무릎 꿇게 하여 하나님과 깊은 묵상을 하도록 이끄신 주님, “괴로움을 기뻐한다”(골1:24)는 사도바울의 간증을 우리의 간증이 되게 하신 주님, 얼마나 주의 일을 많이 하였나 자랑 하기 보다.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였나 가 더 소중함을 알게 하신 주님. 주를 위해 무엇을 포기한 것 같으나 포기할 수 없는 자, 무엇을 내려 놓고 더 내려 놓으려 함에 내려 놓을 것 없는 자, 주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없음은 오히려 이 죄인을 위해 희생하신 주님을 만남의 감격으로, 죄인에게서 일어난 어떤 행위도 자랑치 못하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이 얼마나 감격이며, 십자가의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 것을 알게 하신 주님, 그 감격, 그 기쁨을 가슴 가득히 주셨다. 예수 그 영광의 주님을 찬양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만을 전하게 하셨다. 자신들의 불편함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오직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전하기를 원하였던 코라 부족 형제의 심령을 가슴 가득히 안고 그들의 심정과 마음과 입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말씀이 나의 입과 마음에 있다”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의지하며 말하면 성령이 하시겠다는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였다는 사실에 절규하며 회개하였습니다.받은 은혜가 넘칩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른 체 부끄럽게 살았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고통만 주는 이웃을 미워하며 용서하기 힘들었던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제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 얼마나 더 변해야 할 것이 많은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말씀과 간증으로 우리 모두의 삶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몇 일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만나 뵐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참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전해주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 말씀을 붙잡고 애써 의지적으로 부활을 믿으려 해왔습니다. 육신이 기쁘면 기쁘고, 육신이 힘들면 힘들어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윗이 말하는 구원의 즐거움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선한 행동 후 원래 내가 좀 착했지. 이게 나야. 뭐 그런 뿌듯함. 모두 다 착각이었음을. 말씀 중 우리에게 조금의 선, 겨자씨만한 선이라도 있었으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말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바울의 고백이 알아졌습니다. 제게는 아무런 선이 없고, 말씀을 지켜 행할 능력도 없음을.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그래서 제 안에 부활의 기쁨이 생겼어요. 부활과 성령이 하나이심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마지막에 있는 것 인줄 알았어요. 내가 온전히 성화되었을 때. 임하는 것이 부활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기쁨니다. 부활의 주님이 저와 함께 사시니. 매일매일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저에게 충격적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고난 자체가 아니다. 고난 당해 마땅한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쁨 가운데 산다는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난과 아픔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달아 하나님께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과거에 얽매여 있던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애써 고난의 자리로 가면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야.\’라고 생각하면서, 고난을 피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난 중에 기뻐하지 못했던 것은 고난 그 자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고,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자유 하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라는 진실한 동기가 없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로 인하여 얻은 자유와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른 채, 고난을 흉내 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제가 \’처절한 실패\’라고 부르고 싶은 동생과 함께한 시간들은\’내가 얼마나 죄인이고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슴 아픈 후회의 크기만큼이나 제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엎드리는 원동력으로 삼으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안에 참으로 선한 것이 없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하고, 나는 하나님 없이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요.” “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며 살겠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는데 십자가를 통하여 내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알게 하시어 구원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여 주심을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사모하며 은혜 안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끝없는 사랑, 한량없는 은혜, 영원한 사랑 어찌 다 쓸 수 있겠습니까? 저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며 살겠습니다.사랑 에 빚진 자” 이제 돌아가려고 합니다. 많은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면서 영혼의 부흥을 일으킨 성령으로 인하여 회개와 눈물과 기쁨과 환희를 가득 안고 저희가 왔던 땅으로 돌아 가려고 한다. 회개 눈물이 가득하여 목을 놓아 울던 사랑하는 지체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목회를 한 나를 용서해달라”고 성도들 앞에서 용서를 구하시는 목사님. 십자가의 능력에 감격하여 기뻐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평강을 누리는 지체들. 복음에 목말라하는 영혼들. “내가 16살에 듣던 복음을 다시 듣게 하시니 감사뿐입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90여 살의 할머니 권사님을 생각하며, 저희를 기쁨으로 보내준 부족의 형제들의 심령의 기도가 응답되고 있음을 감격하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 가려 한다. 큰 보름달을 볼 때마다 저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부족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저희의 마음은 벌써 부족에 가있다. 삶에는 고난이 필요하다. 고난이 없으면 말씀이 관념 속에 가두어진다. 관념 속에 가두어진 말씀은 지식에만 머물러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가 없어 체험의 믿음이 될 수 없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보았다는” 옵의 고백을 경험할 수 없다. 죄인 된 우리는 긍휼로 주신 지정의(知,情,意)를 자신의 만족과 유익만을 위하여 사는 존재다. 고난의 삶 자체에는 은혜가 없다. 그 고난을 통하여 은혜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은혜를 안다. 어려운 삶을 살면 살수록 어렵게 살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고 인정 받으려는 자만이 자리한다. 무엇인가 잘하면 잘 할수록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교만이 자리한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것을 자랑하고 싶은 교만이 가득한 죄인이다. 그래서 나는 소망 없는 죄인이다. 복음이 복음 되며 믿음이 믿음 되는 것은 모두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에 의한 하나님의 긍휼임을 아는 것이 축복이다. 진정한 겸손은 소망이 없는 죄인임을 알고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회개할 때갈라디아서 2장20절의 말씀이 응답되는 순간이며 믿음(Faith)에 이르며.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는 세워진다. 아멘파푸아뉴기니, 코라 부족에서 문 성 문 성 올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4년 이전 선교편지. Bookmark the permalink.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