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 이민아 선교사님

 


 


삶이 있는 땅으로 돌아 가면서(1)


 


그 땅은 Papua New Guinea 고산지역에 자리잡은 코라(Kora) 마을이다.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 수도 포트몰스비(Port Moresby)에서 국내선을 타고 해발 2,000미터에 있는 고산 도시 고로가(Goroka)로 간다.


또 다시 그곳에서 5인승 소형 경 비행기(또는 헬리콥터)로 해발 3,750미터의 마이클 마운트(Michael Mount)을 넘어 구비 흐르는 정글의 강을 따라 20여분을 정글 속으로 가면 높은 산 봉우리를 부족의 형제들이 손으로 깎아 만든 작은 비행장을 만난다.


나의 삶이 있는 땅, 사랑하는 부족 형제들이 원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언제나 그리하였듯이 우리가 부족을 잠시 떠나려 하면 몇 일 전부터 찾아 와서 팔과 다리를 잡고 목놓아 울며 마치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슬픔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낸다.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슬픔을 다 토해내야 울음을 멈추는 감정이 단순한 형제들이다.


형제들은 우리가 없으면 춥다라고 마음을 표현하며 헤어지기를 힘들어 한다. 나라에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날 것인데, 그들에게 너희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울며 슬퍼하는 형제들을 향하여 내가 나가면 여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고 기뻐하는 마음을 저들에게 전할 것이라고 하였더니 놀랍게도 이구동성으로 어서 다녀 오라고 보내 주었던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는 땅이다.


 


코라 부족의 형제들은 악령이 자기들을 죽인다고 믿기 때문에 밤에 결코 밖에 나가 다니지 않는데 작은 불빛 하나 없는 칠 흙처럼 캄캄하고 적막한 밤에 저희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놀라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부족의 형제가 한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 불쑥 내밀며 말하기를 오데바나(하얀 사람, Odevana) 다른 곳을 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는데 그냥 가면 그들이 우리가 이곳 정글 속에 살고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을 증표로 가져가십시오 하며 손에든 활과 화살을 건네주었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뛰어넘어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기뻐하는 마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부족 형제들의 심령을 저희 가슴에 가득 안고 부족을 떠났었다.


 


하나님은 정글에 심과 부활의 능력으로 긍휼을 입은 자, 내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무 것도 서 사역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사가 되기보다는 십자가의 죽으 아닌(I am noting.) 소망 없는 죄인(Hopeless sinner)인 것을 알게 하시고 매일 매 순 살아가게 하셨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변론을 듣고이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고 고백하는 욥의 간증을 저희 간증이 되게 하셨다.


부족의 형제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간 성령의 인도로 감찰하심으로 죄를 자복하게 하시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알고, 하나님은 하나님(God is God)이라고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증을 주셨다.


 


처음 부족에 들어 갈 때는 저희를 통하여 복음이 전해 진다는 자만과 사도바울처럼 주의 일 하리라는 결심을 하였던 저희에게 하나님은 부족의 형제들을 통하여 나에게도 부족형제가 가지고 있는 죄의 열매들이 그대로 내 안에도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언제나 자복하게 하셨다.


성령의 인도로 죄가 들어 날 때마다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를 찾게 하셨다.


용서받고 주님을 만나는 감사와 기쁨이 있게 하시어 주권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치셨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내 안에 죄악이 있음을 알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라고 고백하였다고 한다.


죄인 됨을 알 때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감격을 누렸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긍휼이며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다. 회개는 우리가 코라 부족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동기가 되었다.


 


지나간 열 달도 그랬지만 돌아가는 길목 두 달 남은 지금, 저희 마음은 이미 부족의 형제들에게 가있다. 부족 형제들은 말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다.


숫자도 잘 세지 못한다. 하루가 몇 시간인지, 일주일, 한 달이 몇 일인지, 일년이 몇 달인지를 시간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큰달이 지나가는 것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짐작한다.


한없이 저희가 돌아 오기만을 달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을 부족 형제들을 생각하며 좋은 것을 먹어도, 입어도, 귀한 것을 보아도 부족형제들의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 동안 얼마나 질병과 부족전쟁으로 누가 죽었을까?


약을 줄 사람도 없는데 누가 얼마나 아플까?


누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을까?


얼마나 변하였을까?


얼마나 많은 새 아이들이 태어났을까?


소금도 없이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을까?


얼마나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까?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 질수록 파푸아뉴기니가 가까워 질수록 저희의 마음은 부족의 형제들로 가득하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만나는 것처럼 이번에 가면 더 사랑해 주어야지, 이것을 주어야지, 이것도 보여 주어야지, 저것도 사주어야지, 마음 가득히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이 마음과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선이 없는, 소망 없는 죄인이 누가 자기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려 하며, 누가 자기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겠는가. ()이 없는 나에게 선한 것을 생각하고 행하게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며, 죄인을 은혜의 법안에 두신 하나님의 긍휼이며 사랑 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위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감찰하심이 있으며 긍휼로 성령의 인도함이 있음은 축복이다.


우리 안의 선은 우리 지식이나 경험이나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의 선은 오직 십자가의 보혈로 인하여 우리 안에서 자신의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인 것이다.


이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다.


우리 안에 선이 없음을 아는 것은 축복의 시작이다.


우리 안에 선이 없음을 아는 것은 믿음(Faith)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C. S. 루이스는 내 안에 선이 없음을 알고 절망하고 좌절하여야 복을 만난다. 라고 하였다.


 


형제들이 자신들의 불편함과 유익을 뒤로하고 나를 도시로 보내 주었던 심령을 가슴에 안고 부족 형제들의 심령과 함께 안식년이라는 1년을 보냈다.


여러 나라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저희 마음은 부족의 형제들의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주님이 동행하고 계시며 감찰하심이 얼마나 감격한 일인지를 알게 하였다.


어느 날 TV에서 굴비를 보며 방금 뜸을 드린 하얀 쌀 밥과 함께 먹고 싶은 마음에 아내 이 민아 선교사에게 한번 기회가 되면 먹자고 하였는데 다음 날 아침 집을 찾아 오신 목사님의 손에 굴비가 들려 있었던 일, 미국에서 감기로 목이 아파 집사님의 안내로 병원의 장로님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고 장로님이 가지고 계신 한 개 뿐인 목캔디를 주시며 지금 먹고 겉 봉지는 보관하였다가 사먹으라고 주신 목 캔디 한 개를 받아 들고 저녁에 신학대학에서 설교와 강의하였는데 교수목사님 사무실에 갔을 때 말씀하시기를 드릴 것은 없고 이것이 필요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라며 건네 주신 것이 오전에 의사 장로님이 사먹으라고 하셨던 동일한 상표의 목 캔디 새것 한 봉지를 받았던 일. 미국 메릴랜드 지역에서 집회를 하고 워싱턴 시로 오는 길에 이민아 선교사가 어제 지냈던 숙소에 칫솔을 두고 왔는데 다음 장소로 가기 전에 슈퍼에 들러 칫솔을 살 수 있도록 부탁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 성도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식사를 모두 마치고 집사님이 돈 통속에 간직하셨던 무언가를 휴지로 포장하며 부끄러운 듯 선교사님 이것이 필요하신지 모르겠어요 하며 주시는데 손에 쥐는 순간 놀라고 감격하여 심령 안에서 두려움까지 일어나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집사님이 주신 것이 바로 칫솔 한 개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주신다면 음식점에 가득한 과일이나 음료를 숙소에서 먹으라고 주는 것이 상식인데 집사님이 주신 것은 우리 둘에게 두 개도 아닌 필요한 칫솔 한 개. 그 칫솔을 받아 들고 집사님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지금 하나님이 집사님을 통하여 저희에게 주님이 우리를 감찰하고 계심과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때를 따라 채우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지난 삶처럼 1년의 안식년 중에도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는 말씀을 응답하셨다.


 


처음에는 기도가 응답되어도 우둔하여 알지 못하고 지나간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응답됨을 안다고 하여도 언제나 응답하신 것(Gift)에만 관심이 있었던 나, 그리스도인이라면서도 세상의 관점에서만 세상의 가치관(Worlds View)으로만 삶을 살아가던 죄인에게 주님은 긍휼을 베푸시어 그리스도의 가치관(Christian View)으로 살게 하시고 인격의 변화를 축복으로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의 영광으로 구원하시고 선이 없는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선물(Gift)보다는 주시는 분(Giver)를 바라보게 하셨다.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며 기도하게 하시니 긍휼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 안에서 소망 없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어 인도하시며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록에 이름을 기록하신 것 같이 이 세상에서 산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감찰하시며 긍휼 가운데 두셨다. 아멘


 


파푸아뉴기니, 코라 부족에서 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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