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리를 따라야 한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갔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매 비방 받을 것이 두려워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함께있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미혹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인하여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면책하였다. 아직도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고 율법에 메여 사는 것이 책망 받을 일이었던 것이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은 율법을 다 무시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 자들은 오히려 행위를 무시하지 않고 더욱 세워 간다(롬 3:31). 오직 복음의 진리가 항상 율법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복음의 진리가 어떤 행위나 율법준수에 가려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복음의 법은 인간의 율법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은 외적인 것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복음의 법은 내적인 동기에 더 치중한다.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나서 더 깊은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진실되게 믿는 것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만일 예수님과 내가 완전히 연합되어 하나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경우에 율법적인 차원에서 행하는 우를 범한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 안에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나야 복음의 가치가 나를통해 드러나게 된다. 오늘 나의 고민은 예수님 안에서 내가 완전히 사형되지 못한 내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용구 목사